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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31년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후 마샬의 경제원론Princ 덧글 0 | 조회 55 | 2021-06-07 13:02:02
최동민  
나는 1931년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후 마샬의 경제원론Principles을 읽었는데, 어느 정도 습득하고, 많은 부분을 받아들였다. 고전적 견해는 아담 스미스 Adam Smith(17231790)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17721823)에 그리고 나중에는 비엔나에 보다 먼 연원을 두었다. 지난 세기에 주목할 만한 학자군프리드리히 폰 비저Friedrich Von Wieser(18511929)와 유진 폰 뵘 바베르크Eugen von NohmBawerk(18511914), 훨씬 더 저명한 학자 칼 멩거Karl Menger(18401921) 등의 오스트리아 학파 이 세계적 관심과 주의를 끌었던 바로 그 비엔나 말이다. 보다 진지한 미국 학생들은 전쟁 전에 비엔나로 날아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고전학파의 사상에 대한 몰입이 전반적으로 깊은 편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지도원리로도 채택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이 내가 그 사상과 조우했을 때의 상황이다.조달은 군이 전권을 행사했다. 군수품 조달은 유능한 관리로 이름 난 브리한 서머벨과 루시어스 클레이가 지휘했다. 그들의 재능과 경험은 군사 훈련과 전술을 훨씬 능가했다. 서머벨은 이전에 뉴욕에서 뉴딜의 WPA 업무를 다루었으며, 클레이는 나중에 전후 독일의 관록 있는 미국인 주둔자로서 큰 공을 세운다. 그들은 미국경제의 잠재력을 앞에 두고 시방서를 작성하여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하청해주었다. 쿠즈네츠와 한때 그의 제자였으나 이젠 상급자가 된 로버트 나단이 가르쳐주는 대로였다.이런 맥락에서 지미 카터는 주목할 만한 예외였다. 1970년대 후반 경제적 전망이 어두워졌을 때, 그는 경제의 빈약한 실적에 대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발언에서 (경제적 불쾌감 Economic Malaise) 이라는 말이 유행되기도 했다. 낙관적 논평이 경제적 실적을 개선시킨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듯이 그의 인사가 그것을 약화시켰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사는 공적 정직성에 대한 기억할 만한 공헌
참전국들의 전통적이며 지배적인 역할은 전쟁 수행 과정에도 반영되었다. 해전은 전통적 군인 집단의 영역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으므로 기술적으로 고도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로써 전함들은 수마일 거리에서도 놀랄 만큼 효과적으로 서로를 격침시킬 수 있게 되었고, 잠수함이라는 매우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혁신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육지에서는 여전 전통이 지배했다. 정찰기, 중포, 독가스 등이 모두 출현했고 뒤늦게 탱크까지 등장했지만 병사들은 수세대 도안 지녀왔던 소총과 총검으로 서로를 공격했다. 이전보다 전투를 위험하게 만든 것은 자주 심하게 파손되는 기관총 정도였다. 병사들과 함께 굉장히 많은 말들이 프랑스 전쟁과 그 주변에서 이용되었는데, 그것들이 단한 방의 구식 총알에도 취약했던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불행하게도 이 제한을 이루어내려는 노력들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지루하며, 논쟁의 여지가 많다는 점은 분명했다. 게다가 그와 관련된 협상은 확실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종종 실패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것과 재적적, 금융적 조치의 훨씬 고결한 통치권을 비교했을 때이전투구에 가까운 그 무엇과 초연하며 관조적ㅇ니 거시경제적 의사결정을 비교했을 때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시경제 정책이 중앙 무대로 옮겨갔다.현대에는 부유한 나라들은 모두 서로서로 평화롭게 지낸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들은 잃을 것이 없기에 그렇지 못하다. 민족 분쟁은 가난에 의해 격화된다. 종교 분쟁도 마찬가지다. 부유한 나라에서는 정치적 발언권이 어느 정도 경제적 성취에 의해, 그리고 그와 관련된 문화적, 교육적 성취에 의해 획득된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다. 너무나 손쉽게 권력이 요란스럽고 목소리가 크며 병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장악되는 것이다.불황을 그냥 내버려두면 스스로 보정한다는 견해는 결코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견해가 다시 공공정책의 토대가 될 만한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전쟁을 개시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벨기에를 침략했고,